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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3]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이야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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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사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은 꽤 있으실 듯 합니다..
사진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지만 브레송을 대변하는 명칭은 아무래도 "찰나의 거장"이 가장 유명하겠지요..

브레송을 찰나의 거장이라고 부르게 된 데는..
그의 사진을 찍는 스타일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브레송은 모든 사진을 연출하지 않고 또한 트리밍이나 크랍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브레송의 이런 사진 스타일을 가지게 한 사람은 바로 헝가리 출신의 사진작가인 마틴 문카시가 있습니다. 실제로 마틴 문카시의 사진들을 보면 브레송의 스타일과 상당히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요..
브레송이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브레송이 마틴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것입니다.

브레송이 미술공부를 마치고 사진에 심취해있던 20대 초반, 브레송은 마틴이 아프리카 리비아(혹은 리비에라)에서 촬영한 이 사진을 보고 그 역동성에 반해 연출하지 않은 사진에서 나오는 인체의 아름다움과 그들의 의식이야 말로 진짜 사진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 그의 사진들을 완전히 변화 시켜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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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을 이야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Magnum 입니다. 매그넘은 뛰어난 보도 사진가들로 이루어진 사진 에이전트 입니다. 매그넘의 정회원이 될려면 엄청나게 가다로운 포트폴리오 심사를 수십번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힘들다고 하더군요. 현재 죽은 사진 작가를 포함해서 정회원 총 인원이 전 세계에 60여명 정도일 뿐이고, 우리나라 사진 작가는 한명도 없으니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매그넘이라는 단체를 이야기 하면, 흔히들 많은 분들이 로버트 카파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버트 카파가 매그넘을 창설했다는 식으로 대표되는 인물이 로버트 카파입니다만, 사실은 엄밀히 따지면 틀린 이야기 입니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조지 로저, 데이비드 시무어, 로버트 카파 이렇게 네명이서 매그넘을 창설 했지요.



매그넘 창설의 배경 이야기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프랑스의 한 신문사에 이 네명이 취직하기 위해서 같은 날 면접을 합니다만 모두 떨어졌고, 떨어진 후 근처의 까페에서 차를 한잔씩 마시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이 네명이 처음 만나게 됩니다. 신문사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네명은 서로에게서 한가지 공감대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당시 보도 사진이 사진가의 독창적인 눈이나 생각보다는 편집자가 중심이 되어서 사진가들에게 제약이 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네명은 의기투함하게 되고 자유 사진가 집단이라는 모토를 내세워 라틴어로 "크다" 혹은 "큰 샴페인을 담는 술병" 이란 의미의 매그넘을 창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때 이 사람들이 신문사 면접에서 떨어지지 않고 합격을 했다면, 아마 지금 매그넘이라는 단어는 콘돔을 대표하는 콘돔 회사 이름으로 유명해졌겠지요. ^^;;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을 이야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진은 바로 이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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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을 찰나의 거장이라고 부르게 만드는 사진입니다만, 사실 브레송을 일약 스타(?)로 만든 사진은 사실 다른 사진입니다. 바로 마하트마 간디의 살아생전 마지막 사진과, 사후 첫 사진을 브레송이 찍어냈기 때문입니다.

간디의 생전 마지막 사진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 이 사진은 사실은 잘못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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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 항상 붙어서 따라다니는 설명을 보면..
"20세기 유력한 인물인 인도의 지도자 간디의 마지막 초상 사진입니다. 이 사진 촬영 후 2년 뒤 간디는 암살 당했습니다." 라는 문구입니다만..
사실은 간디가 암살당하기 바로 하루 전 브레송이 찍은 사진들이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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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생전 마지막 사진 중 대표되는 사진은 바로 이 사진이며 더 많은 사진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레송이 신문사에서 일하던 시절 간디를 취재하기 위해서 인도로 날아가 사진을 찍고 돌아오던 도중 브레송은 간디의 암살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브레송은 다시 인도로 날아가 그의 장례식 사진들을 찍게 되는데, 바로 이 간디의 생전 마지막 사진과, 사후 첫 사진을 브레송이 찍어냈다는 점때문에 브레송은 보도 사진의 거장으로 추앙받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을 보면..
이게 정말 연출도 하지 않았고, 트리밍이나 크랍을 전혀 하지 않은 사진인가~! 라고 감탄하게 되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이유는 브레송의 사진들을 보면, 구도라던지 프레이밍이라던지가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사진을 찍어와서 인화를 하는 과정에서 원하지 않는 사물이 프레임에 들어갔거나 구도상 사물의 무게가 한쪽으로 너무 치우진 경우 크랍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진을 찍을때 급하게 찍어야 하는 경우 수평이 삐뚤어졌거나 하는 이유로 인화를 할때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 트리밍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는 경우입니다만, 브레송의 경우 전혀 이러한 작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들은 구도와 수평, 사물들의 위치 등이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브레송은 기다렸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기다림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가 만들어 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사진을 찍어내는 기다림의 미학을 브레송 그 자신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제 사진 한장 올리면서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나름대로 결정적 순간을 엿볼 수 있는 브레송의 사진 스타일을 흉내내본 사진입니다만, 많이 부족한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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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shington Square Park, Manhattan, NY / 클릭하시면 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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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rukxer.net BlogIcon RUKXER 2007.11.13 2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군요 :-) 찰나의 거장이라....... 그렇다면 우리나라엔 한상균 기자...?! -ㅂ- ㅋㅋㅋ
    요즘은 도촬로 의심하는 눈초리도 은근히 많아져서 즉흥적인 인물 사진을 찍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느낌입니다. 제가 소심한 것도 한 몫을 하지만...ㄱ-

  2. Favicon of https://miketimes.tistory.com BlogIcon iF 2007.11.13 2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사진은 잘 모르나, 정말 왜 찰나의 거장인지 이해되는거 같습니다.

  3. Favicon of https://mewmew.tistory.com BlogIcon 야옹*^^* 2007.11.14 0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기다린다는거..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
    원하던 순간도.. 꼭 셔터와 셔터 사이로 지나가 버리죠.

  4. Favicon of https://yasu.tistory.com BlogIcon Yasu 2007.11.14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서울에서 전시한적이 있었는데, 갔다왔었지요~
    책자와 브로마이드가 제 컴방에 붙어있다는...^_^

    • Favicon of https://mgpro.tistory.com BlogIcon MacGeek Pro 2007.11.15 2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뉴욕에서도 올 초 겨울에 전시를 했었습니다..
      같은 전시회인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그때 브레송 전시회를 보러간게 아니라..
      본문에서 언급했던 마틴의 전시회를 보러 간거였는데..
      메인 전시실에서는 마틴의 사진들이 전시가 되어 있고..
      지하의 다른 전시실에 브레송의 사진들이 전시가 되어 있더군요..

      브레송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이 마틴이라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지요... ^^;;